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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양극화의 비극

가끔 SNS를 통해 소개되는 성공한 사람들의 사진과 그들의 일상을 보면 부러움이 일어난다. 내가 알 필요 없는 그들의 풍성한 일정과 그들이 소유한 많은 것들이 멋지게 보인다. 잘 찍은 사진에는 그들의 자랑이 묻어있다. 그런데 그것을 보면 부럽다 못해 자꾸만 내가 초라해 지는 느낌도 갖일 때가 있다.  

 

인터넷 기사에는 MZ세대의 양극화를 우려한다. MZ세대 중 상위 20%의 재산이 하위 20%에 해당하는 사람들보다 35배가 많다는 것이다. 20대와 30대는 사회의 중추 세대로 자리잡을 중요한 계층이다. 이들이 곧 10년 20년 사이에 사회의 중요 요직을 차지하며 리더의 역할을 할 준비세대다. 이들은 가능성이 많은 세대고 얼마든지 자신의 미래를 꿈꾸는 세대다. 그런데 이들 간에도 심각한 양극화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들의 양극화가 그들의 성취만으로 해석되지 않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된다. 그들의 재산의 바탕에는 부모의 배경이 존재한다. 아직 20대가 큰 자산을 만들기에는 시간적으로 충분하지 않은 데도 이미 격차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즉 부모세대의 재삼을 물려 받은 그들은 세상에서 말하는 출발점이 다른 것에 대한 허탈감이 없을 수 없다.

이보다 더 아랫 세대의 뉴스도 그닥 좋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전문직으로 꼽는 의사가 되는 의대 신입생의 80%가 금수저에 해당하는 상위 20%의 자녀들이라고 한다. 그들의 부모의 한달 수입은 920만원이 넘는 사람들로 국가에서 주는 장학금 수혜를 받을 수 없는 대상이라고 한다. 이미 잘 알려진 내용일 수 있다. 우리나라 이공계 고등학생의 1순위 대학은 의대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은 옛이야기다.

사진출처: 여행사 홍보 사이트

인간의 욕망은 같은 빛깔이다.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은 남도 가지고 싶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모두가 그것을 소유할 수없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오늘날의 세계는 우리를 알릴 기회도 더 많아졌다. 그런데 알면 알수록 부럽다 못해 세상이 원망스럽다면 문제다. '남과 비교하지 말라'라는 고고한 말이 조언이 되지 않으며, 위로도 아니다. 그만큼 우리는 자신을 과시하여 드러내는 일에 쉽게 노출되어 살아간다.

영화 기생충의 지하(출처: 영화 기생충)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게 보여지는 세상에서 많은 정보들은 사람들을 필요없이 괴롭게 한다. 특히 가진 것이 적은 쪽에서 더 괴롭다. 많이 가졌다고 행복할지는 모르지만 자꾸만 커져가는 격차에 서로가 불편한 사회가 되어간다. 불만은 쌓이고 가만히 있으면 더 많은 것을 잃을 것 같기도하고 본인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들이 미워지기도 한다. 사회의 불안이란 이런 곳에서 출발할 것이다. 자신을 더 수양해서 비교 자체를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눈을 없애라는 말고 별반 다르지 않다. 사람들의 욕망은 같은 색깔이다. 그래서 그 색으로 나도 물들고 싶지만 나에게는 물들여지지 않아 차이가 확연해 지는 상태를 참기에는 사람들이 쉽게 초라해진다. 

 

양극화를 완화할 수 있을까? 그런 것들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무엇을 통해서 일까? 공평이 무조건 답일까? 사람들의 마음은 어떻게 평정심을 찾고 평화로워질 수 있을까? 양극화의 비극은 사람들을 비교를 통해 의미를 상실하게 만들거나 삶의 의욕을 잃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