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1,2권 (1부 한의 모닥불) / 조정래 / 해냄출판사
1948년 여순 사건이 시작된다. 해방군으로 한국에 도착한 미군정이 민중의 기대를 어기고 일제 강점기 부역하던 자들을 재등용하여 행정력을 발휘하며 한반도에서 미소에 의한 단독정부를 각각 수립하여 통치하려 하자 지식인들로 시작되었던 사회주의 세력들이 이에 반발한다. 봉건주의를 미처 다 정리하지 못하고 식민지배 아래서 그대로 고통을 겪던 민중들은 사회주의에 열광하여 동조하지만 행정력과 경찰력을 갖춘 우익 세력과 서로 폭력으로 대처한다. 짧은 그들의 통치는 좌우의 심각한 폭력적인 행태만을 확인하고 반란군의 핵심이었던 염상진과 그를 따르는 사회주의 실천가들은 지리산으로 입산하여 시기를 기다린다. 사건 후 불안을 느낀 우익과 행정력은 더욱 좌익의 가족들까지 묵인된 사적 보복에 의한 폭력으로 죽임을 당하거나 고통을 받게 되고 좌익세력을 더욱더 불온하고 국가적 반역 세력으로 규정하여 압박한다.
그들의 대사를 통해 그들이 처한 입장을 알 수 있다.
<김범우> 미국은 제국주의적 팽창주의고, 소련은 그에 못지않은 공산주의적 패권주의라는 사실입니다. 그 두 개의 어마어마하게 큰 발에 짓밟히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땅과 우리 민족입니다. 이런 상황을 직시할 때 우리가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우리끼리 이념대립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단합 아래 하나로 뭉치는 거라는 내 나름의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겁니다.
<염상진> 고통의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는 고통을 당해본 사람만이 아는 것이다. 평생을 노예로 사는 고통을 인내하느니 차라리 삶은 포기해 버리는 것이 나은 것이다. 삶을 포기하는 것보다는 노예의 삶을 벗어날 수 있다면 더욱 좋은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주의 혁명 투쟁은 필연적인 것이 되었다.
<손승호> 나는 이념이라는 것이 정치지향적 인간들이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소. 변증법도, 유물론도, 봉건주의도, 공산주의도, 민주주의도, 모두 정치 지향적인 인간들이 만들어낸 이기적인 지배도구일 뿐이오. 봉건 왕조를 타도하고 세운 공산주의나 민주주의 사회가 도대체 절대다수 인간의 삶을 위해 한 것이 뭐가 있소. 그것들은 새로운 구속일 뿐이고 인간의 본질적 문제는 하나도 해결한 것이 없소.
<문서방> 나라가 공산당 맹글고, 지주덜이 빨갱이 맹근 당게요.
태백산맥 1부는 1946년 이후부터 혼란했던 벌교, 순천, 여수 등의 지리산과 인접한 지역의 역사적 사건을 소설로 생생하게 그려낸다. 소설의 첫 부분부터 여순 사건으로 전개된다. 대하소설인 만큼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주축을 이루는 각 인물의 과거를 통해 당시의 그들이 맞이한 한국의 현실에서 각자의 선택을 보여준다. 이념적 혼란이 난무했던 시절 일본이 연합국에 의해 패망하고 맞이한 독립에서 주체가 되지 못했던 한국 사회의 지식인들은 냉전체제 안에서 이념적인 첨예한 갈등 속에 내던져졌다. 그토록 갈망했던 독립국의 국가 이상은 달랐고 식민지에서 벗어난 민중의 열망과 다르게 미군의 통치 방식은 실망을 너머 갈등을 심화시킨다.
연이은 실정과 당시의 민중의 현실을 외면하고 통치에만 급급한 미군정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식민 통치에 기여했던 이들은 그대로 중용하여 기득권을 인정하여 민심을 잃는다. 이런 와중에 지식인으로서 사회주의를 탐닉한 염상진과 그를 추종하는 남로당 계열의 사회주의자들은 혁명을 통한 사회주의 통일국가를 꿈꾼다. 그러나 그들의 이념은 그러한 사회를 실천하려는 순간 우익과 서로 폭력을 행사하며 결국은 정치적인 권력을 획득하려는 정치적 행동으로 이어진다.
김범우로 대표되는 민족주의자는 좌 또는 우를 선택하기보다 다시 성립되려는 국가를 민족의 힘으로 다시 세우기 위해 양측과 모두 거리를 둔다. 실질적으로 사회주의도 공산주의도, 민주주의도, 자본주의도 모두 새로 태어날 국가를 위해서 우선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이 당시에 얼마나 위험하고 어려운 것일까. 역사적으로 70년이 넘어서도 당시의 어떤 선택이 자신과 국가를 위한 바른 선택이었을지 선뜩 선택하기 어려웠을 그 시기에 김범우와 같은 통찰과 지식을 가지고 있다손 치더라도 무척 어려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회색분자라는 오명으로 양측의 적이자 신뢰하지 못한 집단으로 보였을 것이다.
국가의 미래를 어떻게 정립하고 나갈 것인가를 이념적으로 치열하게 대립하는 세력과 달리 일제 강점기에 숙청되지 못한 일제 협력자들이 어느새 기득권이 되어 자신들의 입지를 굳히고 개인적 욕망을 채우기에 혈안이 되어 우익이라는 이름으로 권력과 부를 축적하는 모습은 민중의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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