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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끌린다

젠더 문제 공부1 <제 2의 성>

 [제 2의 성] /시몬느 드 보부아르

제2의 성/ 시몬느 드 보부아르/ 이희영 옮김/ 동서문화사(2016)

 

[공부 내용] p11~p127(2/3장 가부장시대와 고대인)

 

많은 남자들은 별 악의 없이, 여자가 남자와 평등'하니까 여자는 아무것도 요구할 것이 없으리라 단정하면서, '동시에' 여자는 결코 남자와 동등할 수 없으니 여자들의 요구는 헛된 것이라고 단정한다. 여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대우의 중요성을 판단하는 문제가 남자에겐 어렵기 때문이다.  p26

 

인간이란, 주어진 존재가 아니라 현재의 자기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존재이다. (...) 인간은 자연의 종이 아니라 역사적인 관념이다. 여자는 응고된 현실이 아니라 하나의 생성이다. 그러므로 이런 생성의 면에서 여자와 남자를 비교해야 한다. p62

 

여자를 알기 위해서는 남자와 여자 속에서 경제적인 실체만을 보는 유물사관의 테두리를 넘어서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같은 이유에서 프로이트의 성적 일원론과 엥겔스의 경제적 일원론을 거부한다. 정신분석학자는 여자의 모든 사회적 권리 요구를 '남성적 반항' 현상으로 해석하고 있다. 반대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여성의 성은 다소 복잡한 우여곡절을 거쳐 여자의 경제적인 처지를 표현할 뿐이라고 한다. p88

 

실존주의적 견해는 원시 유목민의 생물학적, 경제적 상황이 어떻게 남성들의 우위를 가져왔는가를 밝혀주었다. 여성은 남성 이상으로 종의 먹이가 된다. 그러나 인간은 줄곧 종의 운명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써 왔다. 도구의 발명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남자에게 활동과 계획이 되었다. 한편, 여자는 출산으로 인해 동물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자기 육체에 얽매여 왔다. 여자 앞에서 남자가 지배자로서 군림한 것은 인간이 자기 존재에 의문을 품고, 셩명보다 삶의 이유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중략) 가치를 창조하여 실존 자체를 가치로 규정한 것이 남성의 활동이다. p94

 

남자는 노동을 통하여 토지를 정복하고 자기 자신도 정복할 수 있었다. p103

 

여자는 사유재산의 등장으로 옥좌를 빼았겼지만, 여자의 운명은 여러 세기에 걸쳐 사유재산에 좌우된다. 여자의 역사는 대부분 상속의 역사와 일치한다. p111

 

 

[생각] 내용이 한번에 정확히 이해되지 않았던 어려운 내용들도 많았다. 젠더 문제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왜 평등하지 못하게 진행되었는지 생물학적인 특성과 심리학적 접근, 유물론적인 경제적 문제에서 찾는 다양한 내용에 공감이 되었다. 하지만 결국 여성은 남성과의 권력 관계에서 대등한 권리를 얻지 못했다는 점이 지금까지의 주요 내용이었다.

남자 고등학생들에게 양성평등을 말했을 때 무척 어려워하거나 매우 부정적인 대응을 자주 보았다. 학생들은 조화를 말한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말하는 조화는 남성의 힘이 우월하다는 전제를 두고 여성의 역할에 대해서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무엇어떻게조화할 것인가를 잘 모른 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인용한 말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공부 내용]p127~p150 ( 2편/제4장 중세에서 18세기 프랑스) 2024.1.11.

 

[내생각 정리] 중세 초기-교회법에 의거하여 여성은 '악의 문'이라는 오명을 가져야 했다. 성경의 '이브'(여성)가 악마의 꼬임에 속아 다시 아담(남성)을 타락시켰다는 이미지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기독교는 철저하게 남성 중심의 사회를 대변한다고 생각된다.  더욱이 토지제도를 기반으로 한 농업 사회에서 여성은 더 가혹하게 노동에 참여했지만 토지의 승계가 남성 중심으로 이어지면서 여성은 토지에 딸린 재산으로 남성에게 승계되거나 후견인 제도를 통해 자신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했다. 거기에 여성의 출산은 남성이 통제하지 못하는 부분으로 성모의 모성성과 이브의 악인 이미지, 신비성이 덧붙여져 마녀의 이미지도 만들어 진 듯하다. 

중세를 넘어 근대가 시작되는 산업혁명과 근대 시민혁명기에 여성들은 토지제도에 묶여있던 시대보다 여성의 노동은 더 많아졌지만 권리라는 면에서는 기계 농동이 가능해지고 물리적인 힘을 배경으로 하는 남성의 역할을 대신하였으므로 권리는 조금 더 신장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성의 권리가 정치적인 면에서 개선되지 못했다. 여성은 저임금에 시달리고 여전히 출산과 양육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권리가 더 신장되지 못하고 브루주아 남성 중심의 법률이 자리잡았을 뿐이다.

이후 여성의 참정권으로 대변되는 권리의 신장은 1, 2차 세계대전과 함께 가속화된다. 남성들이 전쟁터에 나가고 여성이 노동을 대신하면서 여성들은 자신의 권리 인정을 요구하는 정치적 시도들이 이어지고 사회에서도 여성의 노동력과 사회적 기여를 인정하고 활용하는 시대에 들어서게 되면서 선거권이 주어졌다. 참으로 길고 어려운 시기를 지나온 것이다. 

 

게르만 만족의 봉건 제도에서 군사 목무 기준이 토지 제도로 연결되어 여성의 토지 상속이 불인정 되었다. 여성이 상속자이더라도 남편이 후견이이 되었다.  p127

 

오늘날까지 존속되는 모순은 사회에 완전하게 합류한 여자가 특권을 가장 적게 소유한 여자가는 모순이다.  오늘날에도 가부장제 가족 형태가 존속하는 영역은 부유한 지주 계급의 가정이다. 남자는 자기가 사회적, 경제적으로 강력하다고 느낄수록 더 권위적인 가장 역할을 한다. p134

 

남편은 아무 재산도 소유하지 않은 아내를 지배하려고 노력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대신 부부를 결합시키는 노동과 이해관계가 아내르 ㄹ반려의 지위로 끌어 올렸다. (중략) 자유로운 노동 속에서 여자는 경제적, 사회적 역할을 발견하고 실질적인 자치성을 회복한다. p135

아내는 협력자라기 보다 노동과 어머니 임무에 종사하는 하녀와 다름 없다. p137

 

 '정숙한 여자'가 가정에 예속된 결과의 하나가 매춘이다. 성 아우쿠스티누스 "창녀들을 제거하면 풍기문란으로 사회가 어렵게 될 것이다." 

성 토마스 '도시의 창녀는 궁정 안에 있는 하수도와 같다.하수도를 없애면 궁전은 악취가 풍기는 추악한 곳이 될 것이다. '

 

[생각] - 재산이 없는 남자는 아내와 둘이서 노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므로 여성의 노동에 대해 정당하게 인정하고 여성도 자신의 노동에 대한 기여 만큼의 발언권과 빈약한 재산의 권리가 인정되었지만, 부유한 가정의 아내는 남편의 경제적 배경에 기여를 하였더라도(토지 등) 자신이 누리는 편익이 남편에게서 주어졌다고 인식되어 권리면에서 더 취약했다. 중세 초기 문란했던 성 풍습은 굳이 창녀의 존재가 필요치 않았다. 그러나 부르주아 가정이 확립되고 일부일처제가 성립되면서 남자는 쾌락을 가정 밖에서 찾았다. 

앙사앙레즘(구체제) 시대 여성들이 자아의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가장 접근하기 쉬은 분야는 문화 분야였다. 

 

[공부 내용]p151~p187 ( 2편/제5장 프랑스 혁명 뒤의 직업과 선거권) 2024.1.11.

 

부르주아 혁명은 부르주아의 가치와 제도를 존중하는 것에 그쳤다. 

* 오귀스트 콩트(실증주의 철학자)는 남녀 야성의 계급 주장에 대해 

남녀 사이에는 신체적, 정신적 면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어서 모든 종류의 동물, 특히 인간 남녀를 근본적으로 격리시키고 있다. 여성은 '유아기' 의 연장 상태라 인류의  '완성형'에서 멀다 -라고 말했다.

 

산업혁명기 직조 분야 등에 여성이 채용되었다. 대부분 17시간 정도의 노동을 했고 목적 달성을 위해 생계 유지가 필요한 유부녀 중 부양가족이 있는 여성의 채용이 더 쉬웠다.  산업혁명기 여성 노동자의 임금은 남자의 절반 수준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동일하지는 않다) 이유는 여성은 고용주에게 잘 저항하지 못했고, 노동조합 결성이 늦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1차, 2차 대전 직후 여성 노동력의 필요가 높아지면서 인정되기 시작했다.

 

[낙태에 대한 부분] 여성의 생물학적 역할인 출산과 양육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여 기독교가 유럽 사회의 기반을 다진 후 태아에게 영혼이 있다는 측면에서 여성의 낙태는 죄로 연결되었다. 여성은 출산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노동에 참여가 더 어려웠고 권리 신장도 너 늦어졌다. 근대 이후 인구 조절 등으로 낙태가 허용되기도 했으나 여전히 교회의 금기와 사회적 허용의 문제가 여성의 모성 기능을 강조하면서도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모순을 가지고 있다.

 

[여성의 참정권] 2차 대전이후 여성의 참정권 쟁취가 시작되었다. 1893년 뉴질랜드에서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되었지만 영국(1928년)과 미국도 (1933)에서야 여성 참정권이 인정받았다. 

 

영국에서 여성 투표권 운동가들이 남성들에게 압력을 가하는데 성공한 것은 오로지 남성들이 그것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을 때 뿐이다. 남자들이 생각한 것은 언제나 자기들의 계획과 염려, 요구였다.  

 

매음은 묵인되고 정사는 장려된다. 결혼한 여자는 남편에게 부양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더구나 기혼여성은 독신여성보다 월등히 높은 사회적 권위를 누린다. 관습이 여성 독신자에게도 남성 독신자와 똑같은 성적 자유를 인정하기까지는 아직도 까마득하다. (중략) 신데렐라 신화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모두 처녀의 몸으로 행운과 행복을 잡기 위해 어렵고도 불확실한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멋진 왕자'를 통해 그것을 기대하는 편이 낫다고 장려한다. (중략) 
노동자의 대다수에게 오늘날 노동이란 아무 보람 없는 고역이다. 게다가 여자에게는 이 고역이 사회적 권위나 관습으로부터 해방, 경제적 자주성 등의 구체적인 획득으로 보장되지 못하므로, 결혼을 통해 그 의무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여자도 자기를 의식하고, 노동 덕택에 언제고 결혼에서 해방될 수 있기 때문에, 예전처럼 온순하게 결혼에 예속되려고 하지 않는다. 186쪽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과 나의 생각] 

서양에서 아직도 낙태에 대한 찬반 여론과 법률적인 허용 문제에 대해 논란이 되는 이유가 여성의 출산과 양육이 성스러운 것이면서도 여성을 자꾸만 남성과 구분하여 여러 분야에서 동등한 권리의 쟁취를 방해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도덕적인 기준을 앞세워 여성에게 강요되는 많은 제약을 사람들이 주장하였다. 그러나 여성이 그 많은 짐을 짊어지고도 얻은 혜택은 없었다. 이것은 여성의 참정권인정이 늦어진 사유와도 관련된다. 여성에게 들이대는 갖가지 도덕적 기준과 무리한 요구를 남성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확립하는데 적절하게 사용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동안 TV 드라마의 전형이었던 신데렐라 이야기류의 방송이 뜸해진 것이 내심 반가웠다. 소녀들의 환상을 자꾸만 만드는 이야기 대신 요즘의 드라마는 독신 여성의 자기 발견과 스스로의 능력을 인정받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더 많아졌다. 사회의 인식과 여성 스스로의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사회적 문제로 저출산 문제 등 어려운 문제를 사회는 안고 있다. 이것 역시 여성에게 의무만 주어졌던 과거 관습 때문은 아닌지 묻게 된다. 현대사회에서 자신의 발견과 발전을 원하는 사람들이 가사노동과 출산과 육아에 모든 힘을 들이기 어렵고 더욱이 그렇게 낳은 자녀의 미래도 불확실하다면 누가 출산을 기쁨으로 생각하겠는가. 책을 읽으며 이런 문제에 대해 접근이 사회적으로 빨리 있었거나 현재라고 빨리 각성하고 노력하면 어떨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