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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공부

연필

연필

 

문구점에 가면 내 시야에 필기구가 자주 들어온다. 형형색색의 펜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묘한 만족감을 가지게 되고 꼭 필요하지 않아도 필기감이나 손에 쥐어지는 느낌이 좋은 펜을 한두 개 사는 일이 잦다. 필기감이 좋은 펜을 잃어버리면 더할 나위 없이 아쉽다. 공부하러 가는 곳에는 작은 필통을 반드시 챙겨가는 편이다. 필통 속에는 연필도 하나쯤 들어있다.

 

오래전 연필을 처음 잡았던 추억은 아빠와 글을 배울 때였다. 겨울에 농한기가 되면 아랫목에 배를 깔로 삼촌들이 쓰다만 색이 조금 노란 학생 노트에 자음과 모음을 나누어 적어주시고 연필로 한자 한자 써보게 하셨다. 노트를 채우는 일이 재미있었는데 문제는 연필이었다. 학생용 연필 깎는 칼이 없었다. 아빠는 부엌칼로 연필을 예쁘게 돌려가며 깎아서 글씨를 쓰게 해주셨다. 처음이라 힘 조절이 서툴고 연필도 지금보다 품질이 좋지 않아 연필심이 자주 부러졌다. 연필은 몇 번씩 다시 깎아야 했다. 그때마다 밖에서 일하시는 아빠를 큰 소리로 불러야 했다. “아빠~덕분에 유치원이 없던 시골 동네에서 글씨를 가장 먼저 배우고 학교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연필을 잘 다듬어 쓰는 일은 한동안 어려운 과제였다. 학교에 입학하면서 학용품을 잘 갖춰주셨지만 칼은 몇 번 쓰면 날의 이가 빠져서 연필이 잘 깎기지 않았을 뿐 아니라 손에 익숙하지 않아 칼로 연필을 깎다보면 손도 잘 베었다. 연필도 아빠가 해주시는 것처럼 깔끔하지 못했다.

 

어느날 도시에 사는 사촌 언니의 집에서 며칠을 보내게 되었다. 언니 방에는 어린이 월간지 새소년과 다른 잡지도 있었고 순정만화 책도 몇 권 있었다. 그리고 반자동이지만 최신 연필 깎기도 있었다. 지금도 판매되는 샤파라는 제품이었다. 연필을 넣고 돌리면 금새 날카롭고 깔끔하게 연필이 다듬어 지는 멋진 기계가 너무나 부러웠다. 나는 언니의 연필 하나를 계속해서 깎았다. 나중에 몽당연필이 되어 버렸는데 언니가 무척 화를 냈다.

집으로 돌아온 뒤 나는 언니의 샤파가 너무 부럽고 탐이 났다. 아빠한테 무턱대고 그것을 사달라고 졸랐다. 그것도 지금 당장 갖고 싶었다. 물론 안되는 상황이었다. 나중에 사주마 하셨던 것 같은데 왜 그랬는지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지금 기억나는 건 그나마 있던 연필 깎는 칼도 없어져서 부엌칼로 연필을 깎는 데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았던 데다 물건이 비싸서 당장 살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나중에 아빠가 그것을 사주셨다.

 

지금도 서류작업을 검토하거나 혼자서 뭘 써야 할 때 연필을 종종 이용한다. 지금도 반자동 연필 깎기를 사용해서 무척 날카롭게 만든 다음에 사용한다. 사각거리며 종이 위를 지나는 연필 소리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