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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끌린다

질투와 분노, 욕망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그림책 - 여우

마거릿 와일드 그림 / 론 브룩스 그림 / 강도은 옮김 (파랑새)

별점(★★★★★ 5)

그림책 여우는 열려진 결말과 미스터리한 느낌의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책이라고 생각했지만 읽는 과정에서 오히려 어른들을 대상로 쓴 동화라고 느껴졌다. 권선징악적인 결론을 내거나 교훈을 주기 위한 책이 아니라 인간관계와 내면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그림책 여우는 한쪽 눈을 잃은 개가 큰 불로 날개를 잃은 까치 한 마리를 구하면서 시작된다. 개는 절망에 빠진 까치를 간호하며 그래도 산다는 것은 멋진 일이라며 위로한다. 둘은 곧 친구가 되었다. 개는 까치를 등에 태우고 서로의 잃어버린 날개와 눈이 되어 숲을 달리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털이 타오르는 불길처럼 붉은 여우 한 마리가 나타난다. 개는 여우를 반겨주었지만 까치는 자꾸만 자신의 다친 날개를 쳐다보는 여우를 경계한다. 여우는 개가 없을 때 까치에게 개를 떠나 자신과 함께 가자고 속삭였다. 처음에 까치는 개를 떠나지 않겠다고 했지만 여우의 유혹에 넘어가고 만다. 개가 잠든 사이 여우와 까치는 개를 떠나 숲을 달려 먼지가 날리는 평야와 소금밭을 넘어 멀리 붉은 사막으로 들어간다. 잠시 동안 개의 등에서는 맛보지 못했던 날아가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곧 여우는 속내를 내비치며 까치를 사막에 버리고 말한다. “이제 너와 개는 외로움이 뭔지 알게 될 거야홀로 남겨진 까지는 온몸이 불에 타는 듯한 사막에서 혼자 남겨두고 온 개를 생각한다. 그리고 까치는 친구가 있는 곳을 향해 비틀거리며 폴짝폴짝 뛰어간다. 책은 이렇게 약간 열어놓은 결말로 맺는다.

 


이 책의 키워드를 찾는다면 질투, 분노, 외로움, 욕망, 의존, 배신, 어리석음인 듯하다. 책 속 동물들은 모두 온전하지 못하다. 날개 잃은 까치,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개, 분노와 질투, 외로움의 냄새를 풍기는 붉은 여우는 모두 불안이나 결핍을 가진 불완전한 인간이라고 생각된다.

자신의 정체성과 같은 날개를 잃고 절망에 빠진 까치는 영민하며 직감이 뛰어나다. 여우가 위험한 존재임을 느끼고 개에게 여우는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애야. 누구도 사랑하지 않아, 조심해라며 충고하지만 정작 여우의 유혹에 넘어간 것은 까치였다. 여우의 유혹은 너무나 치명적인 것이었기에 까치는 개를 배신하고 과거에 하늘을 날던 그 자유로움을 잠시 느끼지만 유혹의 대가로 다시 혼자가 된다.

불길처럼 붉은 털을 가진 여우는 매우 위험하고 불길한 존재다. 까치의 다친 날개를 쳐다보는 여우는 까치의 욕망을 읽어내고 마침내 개가 잠든 사이 까치를 유혹하여 사막에 홀로 남겨두고 돌아서며 여우는 속내를 말한다. “이제 너와 개는 외로움이 뭔지 알게 될 거야.” 까치가 느꼈던 시선은 분노와 질투, 외로움이었다. 여우는 질투의 화신이자 자신의 외로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둘에게 분노의 화신이 되어 관계를 망가뜨리는 잔인한 행동을 한다.

책 속의 개는 다른 동물을 배려하는 착하고 긍정적인 존재다. 까치와는 서로의 결핍을 채우며 새로운 관계를 맺고, 어느 날 나타난 여우에게도 곁을 내준다. 그러나 안식처는 되지만 상대의 욕망을 채워주지 못해서 결국 까치는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여우의 불순한 유혹과 까치의 어리석은 선택이 불러온 결과는 관계의 훼손이다. 아마도 까치는 후회했을 것이다. 그러나 까치는 자신의 욕망에 직면했고 자신이 스스로 친구를 찾아가는 행동을 통해 독립적인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결말이 정말 궁금하다. 까치가 죽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한 질투와 나만 혼자라는 외로움이 만든 불특정 대상을 향한 분노를 여우가 보여준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