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한 죽음, 친구의 옆에서 지켜주는 우정]
영화: 더 룸 넥스트 도어(The Room Next Door)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 / 미국, 스페인 / 2024
주연: 틸다 스윈턴(마사역, 미쉘역), 줄리앤 무어(잉그리드역)
수상: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2024)
영화 평점 ★★★★★
[줄거리]
베스트셀러 작가로 활동하는 잉그리드는 출판 기념회에서 친구를 통해 마사가 말기암 투병중이라는 소식을 전해 듣고 병문안을 간다. 오랜 만에 만는 잉그리드는 마사의 상황을 전해 들으며 오랫동안 화해하지 못했던 딸 미쉘과의 서먹한 사이에 대한 이유를 듣게 되고 그녀를 이해한다. 마사는 한창 시절 전쟁터를 누비는 종군기자로 활약하던 열정이 넘치던 그녀였지만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실험 항암 치료가 실패하자, 암 선고 이후 결심했던 존엄사를 준비한다.
마사는 잉그리드에게 자신이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것은 마사가 원하는 시점에 죽음을 선택하도록 외롭지 않게 옆 방에서 자신과 함께 있어 것이다. 삶을 포기하는 일에 찬성하지 않았던 잉그리드는 망설였지만 옆에 아무도 없는 마사의 입장에서 원하지 않는 치료를 연명하며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거부하는 그녀를 외면하지 못하고 그녀의 곁을 지켜주기로 한다.
마사와 잉그리드는 모든 사실을 둘만이 아는 비밀에 붙이고 치료를 준비하기 위해 잠시 뉴욕의 외곽으로 여행을 가는 것처럼 꾸미고 마사의 마지막을 준비할 아름다운 숙소로 옮겨간다. 그러나 친구의 죽음이 두려운 잉그리드는 마사와의 일에 대해 유일하게 비밀을 공유하는 친구 데이먼과 상의하고 마사의 죽음 이후에 있을 법적인 문제를 부탁한다.
점점 불꽃이 희미해지듯 마사는 일상에 흥미를 잃어가고 그런 그녀를 잉그리드는 옆에서 조용히 돌봐준다. 그리고 결심이 선 어느날 잉그리드가 데이먼을 만나기 위해 잠시 외출한 사이 마사는 햇볕이 드는 발코니 베드에서 자신의 삶을 내려놓고 마지막 선택을 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난 잘 죽을 권리가 있어, 존엄을 지키며 퇴장할래
종군기자로 수많은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마사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당당하고 싶어 한다. "굴욕적인 고통 속에서 죽지 않겠어. 이것도 전쟁이고 두렵지 않아. 내 싸움의 방식을 보여주겠어." 그녀는 당당히 말하고 존엄한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고자 준비한다. 비록 불법적 과정을 거쳐 안락사를 위한 약을 구입했지만 자신이 죽음을 선택할 때 옆방에 있어 줄 것을 잉그리드에게 부탁한다.
항암 치료로 인한 통증으로 마사는 병색이 짙어지지만 영화 속에서 고통스러움은 비춰지지 않아 현실적이지 않았다는 점은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아쉬움이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영화는 뒤돌아 보면 모든 삶이 다 아름답고 화려하듯 죽음에 이르는 길도 삶의 한 과정처럼 장면마다 화사하다. 그것은 감독의 색감과 관련되어 있겠지만 그녀들의 의지가 장면마다 선명하게 표현되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무채색이 아니라 그녀의 당당한 선택으로 맞이한 깔끔하고 화사하게 보이도록 한 것 같다. 그래서 영화는 죽음에 대해 무거운 생각이 들지 않게 한다.
그러나 역시 죽음이 아름답고 화사할 수는 없다. 죽음은 자신 혼자서 담당하여 걸어가야 하는 인생의 길이다. 그녀가 죽음의 장소로 선택한 숙소에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걸려있다. 호퍼는 화려한 도시 사람들이 느끼는 단절과 외로움 또는 공허를 짙게 표현하는 작가이다. 죽음이 아무리 당당하더라도 그것은 함께했던 모든 인연과 단절이며 작별이고, 외롭지만 혼사서 가는 길이다. 마사가 마지막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는 장면은 호퍼의 그림에서 느끼는 감정을 전하고 있다. 또 하나 영화에서 제임스 조이스의 '죽은 사람들'의 문장이 나온다. "눈이 내린다. 온 우주를 지나 아스라이 내린다. 모든 산 자와 죽은자 위로" 삶으로 시작된 모든 것은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순환하는 겨울과 같은 계절의 이미지를 드러낸다. 조용히 어디에나 내리는 눈처럼 죽음도 모두 공평하게 맞이할 몫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마사처럼 죽음을 준비하고 당당해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든 싫든 죽음이 다가올 때 대부분 영화와 같은 상황이 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다. 그럼에도 색감이 주는 아름다운 때문인지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은 다는 점도 있었고 마사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을 동행해주는 우정
앞에서 호퍼의 그림과 영화 속 마사의 죽음의 장면이 연결된다고 했지만 영화가 죽음에 대해 마냥 외롭다고 느끼지 않았던 이유는 잉그리드가 마사의 여정에 동참해 주었기 때문이다. 잉그리드는 자살이나 삶을 포기하는 것에 무조건 동의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마사의 의지와 뜻을 이해하고 어려운 일임에도 그녀의 마지막을 지켜준다. 지켜 준다의 말 속에는 그녀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들어주고 그녀가 하고자 하는 일에 동행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인텨뷰에서도 밝혔듯 그녀는 작가로 타인을 관찰하는 존재이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들이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며, 지지하는 것이다. 그녀는 우정으로 마사의 여정을 같이한다.
마사는 죽음을 맞아들이는 동안 외롭지 않았다. 호퍼의 그림에 외로움이 있다면 마사 자신을 바라봐주며 자신의 마지막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 잉그리드가 있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을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을 준비하고 실행할 친구를 비밀로 지켜주는 임무는 무겁고 슬펐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 속 잉그리드는 그녀를 인정하고 지지하는 사람이었다. 영화의 마지막에 그녀의 딸 미쉘에게 엄마의 사정과 이야기를 전하는 것도 친구 잉그리드다.
영화가 죽음에 대한 공포나 쓸쓸함으로 무겁지 않았던 것은 생각해보면 색감때문이 아니라 둘 사이의 우정이 서로를 지지해 주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진 출처: 영화 '룸 넥스트 도어' 예고편 캡쳐, 스틸 컷
<시네21 인터뷰 '배우 줄리엔 무어'>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10627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
[인터뷰] 살며 관찰하며 지지하며, <룸 넥스트 도어> 배우 줄리앤 무어
불안과 우울에 사무치는 연기로 줄리앤 무어를 넘볼 자가 있을까? 그는 수많은 작품에서 스틸레토힐을 신은 채 유리로 만든 바닥을 질주하는 듯한 여성을 연기하며 스크린에 위태로운 균열을
www.cine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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