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교사를 시작했을 때 주변에 친한 친구들이 놀렸다.
'바른 생활' 이게 좋은 말 같지만 그 안에 나에게 더 생각해 보라는 뼈있는 말이었다.
매사 너무 진지한 게 문제다. 모든 일에 진심이라서 문제가 된다는 점이다.
직업군이 워낙 윤리적 각이 잡혀진 직업군인데 여기에 생각까지 거기에 맞춰려는 것 같이 행동하고 있다는 이야기 였다.
삶이 좀 더 유연하려면 생각도 유연해야 하는데, 그 직업군에 전형적인 모습이 나의 젊은 시절이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내가 남이 만들어 놓은 어떤 기준에 자꾸만 맞추려고 해서 그런 것 같다.
즉, 교사란 이런 생각을 해야 해, 이런 삶이 멋있는 삶이야. 바람직하다는 것은 좋은 거야 등등
나는 내가 어디선가 읽었거나, 보았던 어떤 그림이 마치 교과서에 그려진 삽화와 같은 것들이 많았다.
살재로 나는 매우 보수적인 성향을 지향하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러나 생각은 또 그 보수적인 틀과 같은 생각에서 빠져 나가고 싶은 충동이 많은, 참으로 이상한
어제 교감 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내년에 새로 신설할 부서의 보직을 맡아주었으면 하는 내용이었다.
그 이야기는 내년에 일이 많은 부서이며, 아마도 그 일을 위해 기꺼이 희생해야하는 부분을 담당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망설임 없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유는 작년에 상처가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작년, 그 선생님과는 처음부터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고, 처음에 다른 사람들의 우려를 듣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녀는 나와는 다른 성향의 사람이고, 나와 맞지 않았다.
부서원으로 구속이 별로 없는 사람이며, 일하는 방식도 달랐다.
누가 더 좋다, 옳다 이런 말은 맞지 않는 사람이었디만 결국은 나와 상극이 되었고 결국은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결국 냉담한 관계로 번져 갔다. 나의 가장 나쁜 면을 끌어 낼 수 있는 사람이었고, 나의 태도도 그랬을 것 이다.
결국은 나와 그 사람은 서로 마주 보고 싶지도 않은 상태까지 갔고, 나는 그녀을 인정할 수 없는 단계로 이어졌다.
그리고 진짜 별것 아닌 업무 평가에서 나는 나쁜 사람으로 결론이 나버렸다.
솔직히 나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작년에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가질 만큼 심리적으로 충격을 받았다. 그것을 누구에게도 말 할 수 없었다. 그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정말 그럴 마음일 것 같아서 작년엔 그냥 참고 참았다. 그리고 내린 결정이 잠깐 학교를 떠나있기로 한 것이다. 다시는 꺼내기 싫음에도 아직도 작년의 감정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을 보면 이제 상처를 쳐다보기로 한 것이고,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아직 상처는 아물지 않았고, 트라우마는 저 깊은 마음 속에 남아있다.
그리고 나에게 보직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교감선생님이 정말 사정을 모른 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죽고 싶지도 않고, 심리적으로 나를 궁지에 몰고 싶지는 않다. 내가 더 현명하다면 그러지 않겠지만 내가 현명하지 않다면 그 국면을 벗어나서 다를 국면에서 나를 이끌어야 할 것 이다.
나는 나쁜 사람이며, 나는 치졸하고, 능력없으며, 나쁜 동료로 남고 싶지 않다.
작년에 죽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그런 생각을 나에게 1년 내내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다시 그 지옥으로 가고 싶지 않다. 내가 스스로 나를 괴롭히는 순간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이 내가 모든 일에 너무 진심이기 때문에 발생했다.
일을 시작했다면 진심으로 열심히 하기를 바라지만 나의 진심과 타인의 진심이 다르며
그것의 정도를 논하기 어렵다. 나는 이제 가벼워 지고 싶다. 굳이 모든 일에 진심이고 싶지 않다.
가볍고 유연하고 싶다. 차라리 진심을 조금 만 더 희석해서 가졌더라면 나는 조금 더 편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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