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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인공지능 시대의 기대와 두려움

얼마전 테슬라가 인공지능 로봇을 선보였다. 물론 현재 만든 로봇은 아니라고 한다. 앞으로의 가능성 이지만 그들은 미래 사회에 대한 그들의 기술을 말했다.

정보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인공지능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머지 않아 SF영화에서 보았던 로봇과 함께 집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별다른 이질감이 없다. 아마도 언젠가는 로봇에게 청소도 시키고, 빨래, 설거지, 식물 물주기 등 인간이 반복적으로 해야할 단순 작업을 대체해줄 것 같다. 고단하거나 귀찮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줄 인공지능을 탑재한 똑똑한 로봇을 반길 것 같다. 세탁기와 식기세척기, 밥솥이 똑똑해지고 나를 이해해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행복한 상상만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 인간이 그리는 미래의 풍경이 대부분 기술 발달로 천국과 같은 멋진 환상만은 아니다. 대부분의 소설과 영화에서 미래는 매우 우울하다.

왜 사람들이 그리는 미래는 디스토피아일까?

미래를 다른 영화로 가장 흥행한 작품으로 '메트릭스'시리즈일 것 같다. 미래에 인간은 기계와 전쟁을 한다.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AI는 인간과 권력싸움을 하고 결국 인간은 자신이 만든 기계를 이기지 못하고 기계를 위한 에너지원으로 사육되기 시작한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도 기계와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생활은 행복하지 많은 않다.

인간이 만든 피조물이 인간을 생각하고 학습하는 분야에서 이기는 장면을 알파고를 통해 알게 되었고, 그때 받은 충격으로 생각하는 기계를 두려워한다. 그 이야기는 생각이 인간만의 전유물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생각이라는 것을 원숭이가 하는 순간 영화 '혹성탈출'의 비극적 장면이 나타날 것이라고 인간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생각은 인간만 하는 것인가? 많은 과학자와 뇌과학자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동물은 일정부분 생각과 학습이 가능하다. 연체 동물 문어도 학습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왜? 사람은 고등의 사고를 인간만 한다고 생각할까.

인간은 자신이 육체적으로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많은 동물 중에 인간은 물리적인 힘에서 우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인식한다. 다만 그 불리함을 지식, 지혜, 전략, 전술 등을 통해 극복한다고 믿고 있다. 그것들은 모두 고등의 사고를 통해 가능한 것들이다.

두려움이란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과 공포이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가장 원초적인 감각적 신호다. 되돌아가서 인공지능, 혹은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에 대한 기대와 공포는 함께 존재하지만 현재는 기대가 먼저 인 것같다. 다가올 미래가 어떤 것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