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데미안’(헤르만 헤세)을 읽고 한참 사춘기를 빠져나오고 있는 아들과 딸에 대해 생각했다. 나의 아이들도 나름의 성장을 위한 사춘기의 격변기를 지나고 있고, 덕분에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과 태도 때문에 나와 부딪치곤 한다. 다행히 아이들의 사춘기는 요란스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내용은 충분히 혼란스럽다.
성장통이란 당연한 일이지만 때로는 가혹하다. 이것은 성장통을 겪고 있는 본인에게도 그렇지만 이것을 바라보는 부모나 기성세대에게도 충격이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기듯 천사같았던 아이들은 내부에 악마를 찾아내 잘도 놀래키기도 하고, 때로는 실망감에 눈물을 찍어내리게도 한다. 본인들도 지나왔을 그 사춘기의 정신적 독립의 투쟁을 자신이 예전에 부모에게 했듯이 그대로 당하고 있다. 하지만 약자의 투쟁은 쉬운 일은 아니다. 성숙하지 못한 혹은 경제적인 문제를 포함해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서 기존 사회에 저항과 투쟁을 한다는 것은 자신 스스로에게도 큰 출혈이 발생한다. 데미안도 유년기 두 세계에 대해 인식을 한 이후 부모님과 기존의 질서에 맞게 살아보려고 처음엔 노력 했지만 한번 자신의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그 야릇한 충동을 느끼고 난 데미안은 결국 성장을 위한 고통의 시간 속으로 걸어간다. 성장통은 괴로움과 외로움, 방황하는 청춘의 고통과 슬픔과 비애를 동반한다.
그런데 이런 성장의 괴로움이 사춘기로 끝나지 않는 것 같다. 성장의 고통은 정신적인 독립을 꿈꾸던 사춘기이후 자주 등장한다. 사회에 적응해야 했고, 부모가 되면서 다시 부모 역할에 적응해야 했고, 나이가 조금 많아지니 또 다시 젊은 세대와 변하는 세상과 적응이 필요하다. 결국 성장통은 여러 번에 걸쳐 쉬지 않고 문을 두드리는 손님 같다. 인간은 변화되는 사회와 자신의 인생 시기에 따라 정신적으로 계속 적응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보다.
최근 나는 갱년기에 가까이 왔다. 어쩌면 지금이 그때인지도 모른다. 다시 나의 감정과 나의 위치와 모든 것에 대해 회의하고 다시 고민한다. 그때마다 외롭고 나 스스로에게 집중해야 함을 깨닫는다. 역시 이것도 괴롭다. 알을 깨고 나온 세계는 완벽하지 않다. 선과 악, 절서와 무질서, 욕망과 절제 등 무수히 많은 것이 혼재된 곳이다. 이곳에서 압락사스는 무엇인지 찾지도 못했다. 완벽하지 않은 존재로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자 노력하는 것뿐이다. 어떠한 성장도 그에 따른 고통과 희열을 동반함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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