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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안동에 조문을 다녀오다

 

아직 동쪽 하늘에 해가 떠오르지 않은 이른 아침, 공원에 켜둔 가로등이 아직 스위치 아웃하지 않은, 한동안 잊었던 느낌이 온 몸속으로 빨려들이 밀려왔다. 청량리까지 전철로 가야한다. 이른 아침 각자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한치의 주저함 없이 앞을 향해 직진하는 사람들을 뒤를 조용히 쫒았다. 환승역 긴박함도 여전했다. 잰걸음으로 계단과 에스컬레이트를 오르고 내려서 다시 1호선의 붐비는 전철 안에서 한참을 보내야 했다.

 

청량리역, 오랫만에 온 역은 많이 달라졌다. 경춘선, 중앙선이 출발하는 청량리역은 KTX 환승을 위해 말끔하게 잘 정비되고 연결도 좋았다. 안동행 KTX는 조용하게 아침의 햇살을 가르며 원주를 향했다. 원주를 지나면 다시 남쪽으로 돌려 제천을 넘어 단양을 지나고 풍기와 영주를 지나 안동으로 가게 된다. 일단 서울을 벗어나면 지방의 작은 도시들은 각자의 매력을 보여준다. 대부분 분지에 자리한 중소도시들의 아침을 스쳤다.

 

작은 도시들을 지나쳐 갈때마다 초겨울에 들어선 풍경들이 모두 달랐다. 원주를 지나칠 때 현경이를 생각했고, 제천을 지날 때는 같은 방을 썼던 문주가 떠올랐다. 단양에서는 길차길 옆으로 줄을 댄 시멘트 공장들의 위엄과 숨어 있는 그 공장들이 아파트를 만드는 시멘트를 주는 대신 산을 발가벗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풍기를 지날 때 인삼을 그려넣은 탑과 인견 공장이 눈에 들어오며 최선생님을 생각했다. 드디어 안동에 도착했다.

 

안동에 연고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 안동 사람이 꽤 있었다. 탁구 잘 치던 영어선생님 김미지가 그랬고, 친구 같은 후배 권경희 선생님이 그렇고 언니 같은 이영수 부장님이 그렇다. 모두 영어 선생이라니... 양반 도시에서 오히려 한문이나 유학자가 많아야 할 텐데 나는 아는 사람이 죄다 영어 선생이라니 우습다.

 

장례식장에는 사람들이 없다. 가족 말고는 찾는 이가 극히 드물다. 그래서 커다란 조문장의 식당에 덩그러니 앉은 내가 어색해 보였다. 가족도 아니면서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은 상조회사의 직원분들과 나만 인 것 같았다. 세상이 그렇게 변해간다. 부장님 얼굴을 보고, 조문도 했다. 미리 찾아본 조문 예절을 잘 숙지하고 어색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차려준 밥을 잘 먹었다. 삶과 죽음이 한 공간에 같이 존재하는 것이다. 조문을 하는 사람에게 고마움과 더불어 그를 위해 준비한 음식을 잘 먹어주기를 바란다.

 

돌아오며 길에 창으로 보이는 도시는 낙동강이 흐르기도 하고 큰 산들을 뚫고 나오니 남한강이 유유히 흐르는 도시도 지났다. 삶이란 혹은 죽음이란 또 그런 것은 아닐런지, 큰 산을 통과하기 위해 지났던 캄캄한 터널처럼 낙동강으로 흘러갈 것들과 남한강으로 흘러갈 것을 구분하는 것은 아닐까...

 

흘러가는 강물처럼 삶도 그렇게 흘러가는 것은 아닐까.. 남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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