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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공부

건초더미-모네의 그림을 감상하며

지난 봄 무렵 모네의 위작 그림 몇 점을 샀다. 빛에 따라 변하는 순간을 마치 내가 그 장소에서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원작 그림에 비하면 턱없는 위작이지만 그림에 눈길이 자주 갔다.

 

첫 번째 그림은 노적가리 연작 중 한 작품이다. 하얀 구름이 산 너머부터 파란 하늘을 절반도 넘게 가리고 지나는 날 포플러 나무들이 살랑거리는 바람에 가늘게 흔들렸을 것이다. 병풍처럼 막아선 그 나무들 사이에는 마을로 가는 길이 지날 것이다. 한참 들판을 걷던 남매는 나무들 너머 밀밭으로 나와 추수가 끝난 밭으로 갔다. 밀밭에 작은 풀들은 어느새 제멋대로 피워낸 꽃들로 장식되었고 둘은 커다란 건초더미 그늘에 앉았다. 햇볕은 들판을 비추고 건초 더미 그늘 아래서 하얀 드레스의 소녀는 어린 남자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다.

 

이 그림이 좋았다. 키 큰 포플러 나무 아래의 길로 나도 걷고 싶었다. 그 옛날 1번 국도가 지나던 우리 마을에도 아름드리 포플러 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다. 자갈이 깔린 비포장 신작로에는 먼지를 폴폴 날리며 트럭과 버스가 지났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서 서울까지 간다는 그 길을 따라 나도 동생을 데리고 학교에 오고 갔다. 신작로 양 옆으로는 논과 밭들이 있었고 가을이 되면 추수를 마친 논에 노적가리가 쌓이곤 했다. 가끔 수확을 마친 밭에서 미처 찾아가지 않은 고구마와 땅콩을 조금 얻기도 했던 어린 시절이 그림 어딘가에 담겨져 있었다. 노을이 지는 서쪽 저녁하늘을 노적가리 밑에서 바라보았거나 포플러 길을 따라 붉은 해가 서쪽 산 너머로 지는 모습을 수없이 보았다. 땅거미가 짙어지면 노적가리 너머의 논에서 일을 마친 아빠가 어깨에 삽을 들쳐 매고 터벅터벅 오실 것 같았다. 그래서 그림을 벽에 걸어두고 한동안 생각에 잠기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