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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이지만 떠남이 행복한 여행

추억도 느낌도..중남미문화랑 같이

                                    

중남미 문화원 가는 길

중남미 문화원이 있는 곳 고양(高揚)시는 서울의 서북부 지역으로 한강과 마주하며 낮은 구릉과 비옥한 평야가 펼쳐진 고장이다. 김포와 더불어 곡창지역으로 지금도 주변에 논과 원예단지가 있고 5월이면 꽃박람회가 열려 화훼단지가 활성화 된 곳이다. 중남미 문화원까지 가는 길은 외곽순환도로를 타고 가다가 통일로 IC에서 1번 국도를 타고, 다시 39번 국도를 따라 벽제역을 넘어 고양시 외곽으로 가야한다. 조선시대 한양에서 중국까지 가는 관서대로는 개성을 지나 평양을 거처 의주로 넘어가는 길로 파주와 문산을 거쳐 중국에서 오는 사신들이 긴 여행의 여독을 잠시 풀고 왕을 접견하기 전에 의관을 고치던 벽제관터가 있다. 이곳에 객사와 함께 역참이 있었지만 지금은 덩그러니 터만 남아 역사를 말하고 있지만 이목을 끌지 못하고 있어 조금 쓸쓸해 보인다.

 

 

문화원 둘러보기

외곽에 자리하긴 했지만 비교적 넓은 공간에 유물 전시관, 미술관, 종교 전시관, 야외조각공원 등이 세심한 손길로 배치되어 있다. 입구부터 여인상과 돈키호테를 연상하게 하는 청동상이 현대적인 감각으로 중남미 문화를 표현해 주는 듯하다.

박물관의 첫 번째 전시실에 들어서면 아담한 정원에 있을 법한 분수대를 만난다. 스페인의 대 저택이나 성당에서 바로 옮겨온 듯한 분수가 천장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 손님을 맞이한다. 전시실의 관감 순서를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중남미의 문화의 뿌리가 인디오의 문화에서 시작되어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전파된 문화의 영향을 받았음이 잘 드러난다. 4개의 전시실은 토기실, 석기 및 목기실, 가면실, 생활공예실로 구분되어 있고 각 실마다 상당히 중요한 역사적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다산이나 풍요를 의미하는 여러      상징물과 토우들은 웃음이 나오는 토속적인 것들과 태양신을 위한 제사와 관련된 것도 있었다.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 중에는 안데스의 풍부한 나무를 깍아 만든 동물형상의 조각과 다양한 가면이었다. 가면은 의식행사는 축제 때 사용하던 것이라는 데 그중에서 인생경로를 상징하는 가면이 인상적이었다. 젊은 사람의 얼굴이 점차 늙어가다가 마침내 해골이 되는 모습을 담아 삶의 의미를 보이는 가면에 눈길이 갔다. 다른 전시실에는 유럽인의 도래와 함께 유럽의 영향을 받은 일상에서 사용하던 도구가 전시되어 있다. 생활 공예실에는 다리미, 주전자, 축음기 등이 직접 사용하던 물건들인 듯 사람들의 손때까지 전시된 것 같았다. 설립자가 사재를 내어 조성한 곳이라는 데 둘러볼수록 놀라웠다. 세심하게 신경 쓴 흔적이 많았는데 잠시 화장실에 들러 손일 씻을 대 조차 마치 중남의 어느 곳의 식당의 화장실을 옮겨 놓은 듯 꾸며졌다.

 

박물관 밖으로 나오면 길을 따라 야외조각 공원으로 이어진다. 가는 길에는 초록빛이 벤치와 탁자가 여행자들의 다리를 잠시 쉬게 한다. 잠시 앉아 친구와 담소를 나누도록 유혹하는 곳이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을 연상하게 하는 조각공원의 빨간 대문을 통과하면 중남미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조각품이 멋지게 배치되어 있다. 대부분 현대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들로 조각의 조형미만으로도 좋은 미술품을 감상할 수 있어 흐뭇하다. 개인적으로 네 개의 바람이란 작품은 청동임에도 정말 바람처럼 느낌이 다가왔다.

작품들을 트인 야외공간에서 감상하며 천천히 걸어 오르면 조각공원이 언덕 위로 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정말 이곳에서 수녀님과 신부님이 미사를 집전하실 것 같은 곳이다. 엄숙하기도 하고 정갈해 잠시 앉아서 기도를 하게 만드는 장소다.

 

중남미 문화에서 종교를 빼고 생각할 수 없을 것 같다. 스페인인이 처음으로 아메리카에 도착할 당시부터 그들은 새로운 Ei을 원하기도 했지만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해방을 성취한 뒤 고무된 종교적인 의욕을 아메리카 땅에 옳기고 싶어 했다. 이베리아 반도의 회복으로 국권이 강대해진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신의 축복을 점령지에서도 이어가고자 했다. 종교전시관에는 주제단 (길이 4.5m, 높이 6.5m)이 설치되어 있는데 라틴아메리카 최고의 바로크 종교미술가 A. PARRA(멕시코)의 대표작으로 그의 작품들은 실제로 바티칸(교황청)에서도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레고리안 성가와 비슷한 음악이 종교전시관 안에 조용하게 울려퍼지고 안에는 마치 성당의 한부분을 옮겨 놓은 듯해서 가만히 앉아 성가를 들으며 잠시 쉬게 된다.

 

 

다시 조각공원을 거쳐 한 바퀴 돌면 오솔길이 이어진다. 결코 긴 길이 아님에도 마치 작은 언덕을 오르듯 어떤 볼거리가 있을 지 궁금해진다. 언덕을 넘어서면 길이가 20가 넘는 도자벽화가 지라한 작은 광장이 있다. 마야의 상형문자(象形文字 HIEROGLYPH)와 벽화, 피라미드 속의 생활풍속이 담긴 유물작품을 기초로 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아즈텍(1325-1527)인은 1년을 280일로 인식하였다. 적도와 가까운 이 지역에서는 해발고도가 높은 고산 문명을 형성하여 농경을 중심으로 문화를 발전시켰다. 이들에게 태양은 농경을 위한 가장 중요한 존재였을 것이다. 중위도의 우리나라는 계절변화가 뚜렷하지만 이들은 저위도로 계절의 변화가 쉽게 감지되지 않았을 것 같은데도 일식과 월식 등을 예측하는 기술이 매우 뛰어났다고 한다. 특히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매장되었다가 1885년에 멕시코시티에서 발굴되어 국립인류역사박물관에 소장중인 아즈텍 달력은 둥근 원형으로 지름이 3.5m, 무게가 24.5t의 석조물인데 그것을 옮겨 놓은 벽화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미술관은 박물관 옆 건물로 지하로 내려가면서 관람하도록 되어 있다. 프라다칼로의 그림을 통해 남미의 미술을 협소하게 알고 있었는데 전시된 그림들도 강렬한 색체와 특유의 문화적 배경이 드러난 작품들이 많았다. 그림 외에도 자수와 직물 등 지역 주민이 직접 만든 수공예품도 같이 전시되어 있어 박물관 설립자 분께서 쓰시던 가구 등 의 물건도 전시되어 있어 생활도 엿보는 기회가 되었다. 미술관의 입구에는 기념품점도 있어 둘러본 작품 중에 엽서로 만들어져 기념으로 하나씩 구입했다.

 

 

 

 

문화원에서 담소를 나누며 추억도 만들기

이곳엔 잠시 여행지에서 여유를 즐기듯 휴식공간이 많다. 전시된 유물도 멋지지만 문화원 안에서 만나는 휴식공간은 정말 매력적이다. 작은 것 하나까지 세심하게 배치하고 생각해 배치한 공간은 여유를 즐기도록 마음을 열어준다. 한참 공원과 전시실 등을 돌고나면 벤치에 앉아 쉬고 싶은 데 이때 먹을거리도 판매된다. 스페인 볶음밥으로 알려진 빠에야, 타코와 같은 간단한 음식을 주문하여 야외에서 즐길 수 있다. 친구나 가족이 함께 가면 둘러보고 잠시 여유를 느끼면서 음식을 먹는 일도 즐겁다. 그늘이 드리워진 야외의 공원에서 서로 음식을 나누어 먹는 연인들과 가족들이 적지 않다.

 

 

 

아이들과 체험학습 즐기기

문화원에서는 아이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자료도 만들어서 판매하고 있다. 전시물이 많기도 하고 자세한 설명이 아쉬웠는데 아이들의 체험학습 책에 설명과 함께 찾아볼만한 것들을 표시해 놓았다. 체험학습 책을 따라 가면서 전시물을 확인하느라 아이들도 재미있어 하고 나도 설명대신 책을 통해 같이 배우는 것 같았다. 아이들을 위해 참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동생 예림이의 질문에 대한 답이 재밌다. 문제 토우를 보고 푸는 문제였는데 머리를 땋아 늘어뜨리고 않아 있는 여인은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요글쎄요” 좀 허무한 대답을 같이 도와주는 체험학습 책도 있었다. 활용하면 좋을 듯....

 

 

라틴아메리카

중남부 아메리카 지역은 과거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지역으로 멕시코와 중미, 카리브해역 및 남미대륙의 국가들을 말한다. 이 지역에는 약 47천만의 인구가 35개의 독립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라틴유럽의 문화가 이식된 지역이다.

사람이 최초로 이지역에 이주해온 것은, 40,000년 전후로 빙하기에 아시아로부터 육지로 연결되었던 베링해협을 통하여 시작되었고 B.C.9000년경에는 미주대륙 최남단인 띠에라 델 후에고(Tierra del Fuego)에 도달하였다. 초기 이주민들은 멕시코와 안데스고원 지대에 정착하였고, 인디오(Indio)로 불리는 이들은 BC7000년부터 농경사회를 형성하였다. 여러 부족 사회들로 구성된 인디오들은 유카탄 반도와 안데스를 중심으로 국가를 형성하며 발전하였다. 16세기초 스페인 정복이 시작되기 전에 인구 5-10만의 도시들이 형성되는데 멕시코 아즈테카(Azteca) 제국의 수도인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과 페루 잉카(Inca) 제국의 수도인 쿠스코(Cuzco)가 그 대표적인 도시들이다. 특히 고도의 수학과 천문학, 섬세한 건축과 고유문자를 보유하였던 멕시코 유까딴(Yucatan)-중미일원의 마야(Maya)족도 값진 세계 일류 문화유산을 남기고 오늘까지 그 후손들이 존재한다.

 

라틴아메리카의 역사

콜롬부스(Cristobal Colon)1492년 우연히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후 에르난 코르테스(Hernan Cortes)1521년 멕시코의 아즈테카 제국을 정복하고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1533년 잉카제국을 정복함으로써 3세기여에 걸친 유럽 식민시대가 열린다.

.남미 제국은 프랑스 혁명의 영향을 받아 1804년 독립한 아이티(Haiti)를 위시로 대부분 19세기 초반부터 독립을 성취하였다. 그러나 왕권을 대신한 정통성의 문제와 구식민지 체제에 집착하는 보수파와 근대화를 추구하는 자유파의 투쟁, 중앙집권파와 분리파의 대립, 열강의 개입, 독재와 군부 쿠데타 등으로 독립 후 시행착오의 악순환을 겪었다.

 

라틴아메리카의 문화...

우리에게 익숙한 아스텍이나 마야, 잉카 문명 외에도 아메리카에는 많은 부족 단위의 문명이 지역별로 존재했다. 이들 문명의 특징은 주로 농경을 배경으로 성립된 문명으로 지금은 우리에게 익숙한 감자와 옥수수를 주식으로 재배하며 발달한 문명들이다. 중남미 문화원의 박물관에 전시실에는 올메카문화를 비롯하여 마야와 잉카 문명이 꽃피우는 데 도움을 주었던 문화들을 소개하고 있다. 스페인과 포루투갈 사람들이 아메리카로 몰려들게 된 큰 이유 중에는 엘도라도(16세기경 스페인 사람들은 아마존강 유역에 황금 나라가 있다고 믿었음)에 대한 욕망이 있었다. 황금을 찾아 간 그들은 황금대신 마야와 잉카 문명의 황금 유물을 보았고 다양한 원주민 문화를 만났지만 그들의 목적이 약탈이었기 때문에 원주민의 문화를 무참히 파괴하고 마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과정에서 인디오들은 유럽문화에 동화되거나 야생으로 숨어 버리게 되었고 지금도 인디오 문화와 라틴 유럽의 문화가 결합된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적 유산을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