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40년 영토 분쟁으로 얼룩진 중동의 화약고, 골란고원을 놓고 이스라엘과 시리아 간의 평화협상이 재개됐습니다.
당초 시리아 땅이었던 골란고원은 두 차례의 전쟁 끝에 이스라엘에 강점되면서 영유권을 둘러싼 양측의 갈등이 계속돼 왔는데요.
이번 협상을 통해서 분쟁의 불씨가 꺼지고, 뿌리 깊은 양측 주민들의 반목이 해소되는 단초가 마련될 수 있을지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김기현 순회특파원이 현장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를 떠난 지 세 시간... 앞서 가던 경찰차가 요란한 사이렌 소리로 취재진이 중동의 화약고에 들어섰음을 알립니다.
짙푸른 올리브 나무 사이로 불쑥불쑥 나타나는 무장 군인들의 어깨 너머에는 완전히 파괴된 도시의 흔적이 간간이 눈에 띕니다.
아랍인들에게는 '반드시 되찾아야 할 치욕의 땅'이지만, 이스라엘에게는 '공존을 흥정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인 점령지'... 바로 골란 고원입니다.
시리아의 영토였던 골란고원은 1967년 제 3차 중동전쟁을 일으킨 이스라엘에 의해 엿새 만에 점령됩니다. 군사적 요충이자 갈릴리 호수가 있는 수자원의 보고였기 때문입니다. 점령된 땅에서는 주민 추방령이 내려졌고 반항하는 이들은 학살됐습니다.
<인터뷰> 피해 주민: "이스라엘 군인들이 주민들을 밖으로 모이도록 했죠. 나가지 않은 사람들은 죽였고, 떠나라는 명령을 듣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위협 사격을 했어요"
강점 이후 꾸준히 정착촌을 확대하던 이스라엘은 1981년 유엔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점령지를 자국 영토로 합병해 버립니다.
전쟁 전, 골란 지역의 유일한 종합병원이었던 한 건물은 갈등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동전쟁을 거치면서 병원은 군인들에 의해 '대형 건물 장악'을 위한 군사 훈련 시설로 변모했습니다. 수많은 환자를 치료하는 곳이 살상을 위한 훈련장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400여 개 병상을 갖췄던 병원을 점령한 이스라엘군은 건물 전체를 군사 훈련 장소로 바꿨습니다.
6년 동안 훈련으로 병실의 벽과 천장에는 수만 발의 총탄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휴전 협정 체결 뒤 수십 년이 지났어도 고원 곳곳에는 여전히 파괴된 채 방치된 건물들이 남아 있습니다.
지난 1974년, 철수하던 이스라엘 군이 중장비를 동원해 도시를 철저히 파괴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섭니다.
실제, 전쟁이 끝난 뒤 골란 고원에 파견됐던 유엔 조사단은 파괴된 건물들의 지붕이 온전한 것으로 볼 때 폭격의 결과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무하마드 알리(코네트라 시 홍보국장): "물론, 도시를 다시 예전처럼 건설할 것입니다. 다만, 우리의 영토를 되찾은 다음에 재건 작업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입니다."
전쟁의 상흔은 이 땅을 떠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들의 가슴 속에도 여전히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았습니다.
지난 1967년 민간인이었던 두 아들을 잃은 라디 할아버지... 이스라엘 얘기만 들으면 언성이 높아지는 80대 노인의 가슴속에 남아있는 전쟁은 벽에 남은 총탄 자국처럼 수십 년 세월이 지났어도 여전히 진행형일 뿐입니다.
<인터뷰> 라마단 라디(골란 고원 주민): "그건 전쟁이 아니었어요. 군인은 군인을 상대로 싸워야지 어린애나 여자들을 상대로 해서야 되겠습니까? 이스라엘 군인들은 제대로 싸우는 법을 전혀 몰라요."
시리아 영토였을 당시 15만을 헤아리던 지역 주민은 1/3로 줄었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다마스쿠스를 비롯한 시리아 전역으로 전쟁을 피해 떠나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이 땅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 그 자체에 다름아닙니다.
<인터뷰> 자말(고교 교사): "우리 땅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 누가 떠나라고 해도 절대 떠나지 않을 겁니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지한다고 해도 우리가 떠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삶의 터전의 분단은 숱한 이별을 낳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 점령지에 아직도 살고 있는 3만 여 아랍계 주민들은 해마다 시리아 독립 기념일을 전후해 골란고원 남서부 '절규의 언덕'으로 모여듭니다.
전쟁 중에 생이별을 해야 했던 부모 형제들과 멀리서나마 만나기 위해섭니다. 이들은 40년 넘게 계속된 이스라엘 점령과 강제 국적 부여 정책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시리아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녹취> 독립기념일 행사 관계자: "시리아는 이스라엘에 살고 있으면서도 어떠한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시리아 시민권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시합니다."
분단으로 인한 극단적인 생이별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쪽 골란에 살다가 시리아로 시집가는 아랍계 신부는 남은 인생 동안 다시는 이스라엘 점령지인 자신의 친정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이 같은 사연은 준 전쟁 상황인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관계가 빚어낸 또 다른 비극입니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 쪽 골란에 사는 '시리아인 신부'의 결혼식은 종종 울음바다로 마감되기 일쑤입니다.
비옥한 토양과 적절한 강수량으로 수천 년 동안 올리브와 밀이 자라던 땅 골란... 40년 넘도록 이렇게 버려진 땅은 하루 빨리 평화가 찾아오고 사람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실제, 올해는 지난 2000년 이후 8년 만에 이스라엘과 시리아 간 평화협상이 터키의 중재로 시작됐습니다.
최근 개최된 지중해 연합 정상회의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시리아 측에 "협상를 위해 진지한 협상을 하자"는 메시지도 전달했습니다.
하지만, 골란에 평화가 깃들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입니다. 우선 이스라엘 국민 2/3가 영토반환에 반대하는 데다 현재 골란에 살고 있는 2만 여 유대인 정착민의 반발이 예상됩니다.
여기에 이스라엘은 시리아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와 관계를 단절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시리아 측은 회담 석상에 반드시 미국이 참석해 결과를 실질적으로 보장해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양측이 모두 쉽지 않은 전제조건을 내걸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의 화약고, 중동의 가장 뿌리깊은 갈등의 근원인 골란 고원 문제... 해결을 향해 다가가는 양 당사국과 국제사회의 노력을 세계는 조심스레 지켜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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