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밭 묘지(편해영/김승옥 문학상 수상작)
<포도밭 묘지> 편해영 / 문학동네
이 소설을 관통하는 소설의 첫 문장에 공감했다. '얻어터지기 전에는 누구나 전략이 있는 법이다.'란 마이클 타이슨의 말을 인용한 구절로 시작한 편해영의 소설 <포도밭 묘지>는 상업고등학교 졸업반이었던 네 명의 친구들이 각각 취업을 통해 사회에 진출하면서 겪는 냉혹한 사회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다. 성적은 좋지만 외모가 문제가 되어 취업에서 밀리는 수영, 상사에 근무하여 일을 익히기도 전에 발생한 문서 실수에 대해 말단 사원에게 실수를 돌리는 회사,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쉬는 시간조차 업무 지시에 따라야 하는 영업직 근무까지 모두 쉽지 않다. 그러는 그녀들에게 충격적 사건이 발생한다. 은행에 취업한 뒤 야간 대학에 다닐 정도로 부지런하고 적극적이었던 한오가 직장에서 과로사로 죽는다. 사회에 진출하기 전 네 명의 소녀는 자신들의 미래가 막연하나마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한오다. 그녀는 현실에서 고졸 여성에 대한 차별을 알고 있었지만 노력하면 학교 다닐 때처럼 자신에게도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확신하고 최선을 다해 직장과 학업을 병행했다. 그러나 그로 인해 경력은 미흡해지고 다른 사원들과의 경쟁에서 밀리게 된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를 '차별'이라고 생각했다. 대학 진학률이 1990년대까지만 해도 35% 미만이었던 시절 대학문을 넘는 사람보다 고등학교 졸업 후 취업이 자연스러웠던 시절은 어쩌면 일자리가 많던 좋은 시절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에 뛰어든 많은 고졸 여자 취업자들의 직장에서 대우는 사회의 발전 속도와 맞춰져 있었다. 학력과 성별에 의한 차별이 흔했고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여성에게 사회나 회사는 관대하지 못했다. 취업을 시작하려는 순간부터 수영의 경우처럼 문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성형이 흔한 이유도 이러한 사회의 요구와 맞춰져 있다. 고운 외모가 여성의 능력처럼 인정되는 사회에서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젊은 층의 사람들이 지나칠 정도로 노력을 기울인다. 어느덧 대학 진학자는 70%를 넘었었다. 이 또한 학력에 대한 차별을 극복하려는 우리의 노력이었다. 하지만 대학에 가고 싶어도 부모의 상황에 따라 학업을 접었던 시대와 달리 직종에 상관없이 대학 졸업장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가파른 경제 성장기에 높은 취업률을 보이며 누구나 출세하고 성공할 계획을 세우고 노력하면 이루어질 것 같지만 세상은 가진 자와 없는 자의 지위나 위치를 구별한다. 없는 자에게는 지나치게 많은 것을 노력과 희생을 원했고, 사회는 매몰찼다. 직업을 통해 경제적 능력을 성취하고 자아를 실현한다는 것은 교과서에나 있는 글자에 불과하다. 미래를 꿈꾸며 열정을 불태우는 청년들에게 세상 살이는 노력만으로는 깨기 어려운 벽을 가진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타이슨의 말처럼 젊은 청춘들은 세상살이에 한껏 얻어맞는 것처럼 지치고 상처를 받는다. 그래서 삶은 힘겹다.
이 소설이 쉽게 읽혔던 것은 펑범한 우리들의 이야기일 수 있어서다. 세상은 빠르게 변했고 기술 발달에 의해 과거보다 편해졌다. 이제 고졸자보다 대학 진학자가 더 많아진 지금도 청춘들은 어렵다. 요즘은 대학을 졸업한 뒤 그들이 만날 세상은 과거보다 더 냉혹하기도 하다. 좁아진 취업 문 앞에서 지금도 한오처럼 성공을 위해 각종 스펙을 쌓고 대학 이상의 학력을 더 높이 쌓아 올리지만 열정만 품고 원하는 것을 가져보기도 전에 지처버려 좌절하는 또는 열정을 가지고 취업에 성공하지만 여전히 높고 힘겨운 현실의 벽에 부딪쳐 포도밭에서 포도송이를 키우지 못하고 말라가는 포도나무와 같은 우리들의 청춘이 존재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