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3 교실에서
방과후 수업을 어제 마쳤다. 수능을 앞둔 학생들에게 수능에 대비한 기출문제를 유형별로 풀어주는 수업이었다. 나와 아이들은 4년 정도의 모의고사와 수능에서 고른 700 문제를 풀었다. 이후에 다시 올해 모의고사 문제를 풀었더니 틀린 문제의 수가 적어졌다. 예년같았으면 모의고사 문제를 모두 맞아야 안심을 했는데 지금은 욕심이 많이 사라져서 한 개 두 개를 실수한 학생에게도 칭찬을 더 해준다. 내가 조급해 한다고 아이들이 더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불안해 하기 때문에 조심하고 있다. 기특하게도 몇 안되는 학생들은 잘 따르고 열심히 한다.
그럼에도...
고3 교실은 다른 어떤 교실들보다 조용하다. 각자 자기와의 싸움에 돌입한 아이들이 내공을 쌓아가는 기간이다. 한 달도 남지 않은 수능을 앞두고 간섭은 적게 대신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것이 어렵지 않은 시기다. 사실 교실에 학생들이 소수만 등교하고 있다. 학생들이 가정학습이나 체험학습을 최대한 끌어다 쓰고 있어 학교에 등교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정학습 기간에 아이들은 학원에서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 학교에서 공부해도 되겠건만 아이들은 좀더 분위기가 수능에 임박한 자신을 가열차게 공부하도록 만들어 주는 곳을 찾아 나섰다.
내가 다녔던 고 3시절과 다른 분위기다. 이 분위기는 대학 4학년 2학기와 비슷하다. 학교에서 자율학습을 통해 자신의 공부를 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해 주지만 아이들의 조급한 마음은 돈을 들여 학원에서 공부하게 만들고 있다. 주로 미술, 음악, 체육 분야로 진학을 원하는 아이는 입시에 맞는 단기적인 실기 연습을 입시 학원에 많은 돈을 들여서 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도 가정학습을 쓴다. 아마도 아이들은 학교에서 해주는 것이 없다고 불평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교사로서 나는 이 모순된 상황에 속이 상할 뿐이다. 학교의 공부가 대학 입시라는 목적으로 응축되기 때문에 대학 입시를 위한 공부 이외에는 뭔든 하지 않으려는 학생들도 많고, 심지어 요즘은 굳이 대학 입시를 위한 공부도 하지 않으려는 추세다. 아이들이 생각이 없다는 이야기라 아니라 제도가 아이들에게 굳이 고 3때 입시 이외의 공부의 필요성이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오래된 병폐로 누구나 다 알지만 누구도 쉽게 말하기 어려운 문제다. 학부모들도 불만이 있을 것이다. 학교라는 곳이 있는데도 많은 돈을 지출해서 대학의 문을 넘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클 것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경제적인 부담을 안고 대학에 간다고 모든 것이 보장되는 것도 아닌데... 경쟁과 자본주의의 한계가 고 3교실에서 공부의 의미를 죽인다.
학교의 목표은 학생들의 성장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목표인 입시를 빼고 생각할 수 없는 구조이다. 이 지굿지긋한 입시 탓을 언젠가는 벗어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