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직업

새 술은 새 포대에 담아야 한다는데..

먼바다 그랑카나리아 2022. 3. 16. 21:34

새 술을 새 포대에 담아야 한다는데... 내가 헌 술 포대 인것 같아 마음에서 희비가 엇갈리는 3월이다. 어제 수업 시간, 3학년 수업은 언제나 부담이다. 이유는 수업의 흥미와 학생들의 진로와 관련된 미묘한 줄다리기 때문이다. 어쩌면 바보 같은 생각이겠지만 그 두 개는 목표가 같아야 한다. 

 

그러나 처음 시작할 때 학생들이 수능을 치러야 한다는 부담에서 자유롭지 않듯 오래전 수능을 보기 위해 교과 내용 전부를 완벽하게 가르쳐야 한다는 부담에서 허우적 거렸다. 고3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다. 4개월 5개월 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수시 원서를 쓰고 준비를 하는 과정을 순서대로 착착 맞춰 간다고 해다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그래서 수업에 들어갈 때 아이들의 진도를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 수업을 수 없이 해봤지만 어려운 그 내용을 찬찬히 공부하지 않고 덥석 달려들다가는 나자빠지거나 할 짓이 못 되는 졸린 시간들의 연속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한 실수를 수 없이 반복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한 명이라도 앉아 있거나, 내 과목이 좋아서 선택한 아이라면 더욱 그랬다. 저 아이가 나에게 대학 가는 길을 묻는 것 같은 눈빛인데 시간을 넉넉히 들이면서 내용을 조금씩 나가서 완성하는 활동형 수업을 하기에는 너무나 무리엿다. 그래서 내용을 중심으로 탐구하도록 했더니 그것도 너무 어려워했다. 사전 지식을 꼼꼼히 갖추지 않는 한 정보를 들이대로 서로 토론하라는 것은 아이들을 어렵게 만드는 지름길이었다.

 

올해는 마음을 내려놓기로 하고 아이들이 알아서 수능 공부를 하면 내가 돕는 형식으로 수업은 아이들의 활공으로 채우려고 했는데, 그럼에도 갈등이 있고 행여 원하는 방향으로 학생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결국 내가 강의식으로 잔뜩 설명만 하는 수업이 되어버리면 뒤돌아 오면서 마음이 어지럽다. 

 

어제가 그랬다. 오늘은 조금  더 나아지겠지... 아이들과 내가 조금은 더 가까워지겠지 생각하며 수업을 한다. 

아이들이 공부를 재미없는 일로 생각하게 하는 게 속상하다. 적어도 들어볼 만한 것, 배움이라는 것이 이때 필요한 것이라고 말하게 하고 싶지만 그것은 정말 쉽지 않다. 요즘은 아이들이 정보를 접하는 기회가 너무 다양하고 재미있는 일이 넘쳐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천사처럼 이쁘다. 처음 고등학교를 시작하는 아이들이 이쁘고 이제 고3이 되어 모든 게 귀찮은 듯 한 눈 빛을 주지만 그래도 귀엽다. 

 

내일은 좀 더 잘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