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의 대사를 통해 삶의 깊이를 말하는 책(박경리의 말)
박경리의 말/ 김연숙/천년의 상상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글쓰기를 한 이후 최진우 선생님이 열어준 글쓰기 프로젝트를 통해 2년 동안 책을 읽고 문장 적기를 했었다. 이와 비슷한 구성으로 박경리 선생의 대작 <토지>의 주요 대사를 통해 우리의 삶에 대해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와 우리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이 책이 좋았던 점은 생각을 열어주는 문장이 서희나 길상이나 이용의 대사가 아니라 주변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건은 주인공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럼에도 주변 인물들의 농이 깊은 대사를 주로 꼽아 이야기한다. 첫 번째 문장은 기화(봉순)과 이상현의 딸인 양현을 보며 명희가 한 대사로 시작으로 한다. "살아있다는 것, 세상을 살았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게는 살았다는 흔적이 없다. 그냥 그날이 있었을 뿐, 잘 견디어내는 것은 오로지 권태뿐이야." 등 주로 자신의 삶을 힘겹게 살았지만 더불어 힘 있게 살았던 인물들을 중심으로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힘겨운 세상살이에 대한 생각, 꽂꽂한 선비로 중립을 지키며 살았음에도 부모로서 자식 상현을 입장을 생각하는 아버지 이동진의 말을 통해 자식과 부모인 나의 관계 등을 자신의 경험과 영화, 소설 등의 다양한 이야기를 덧붙여 이야기한다.
삶이 마냥 이상만 가지고 살 수 없었던 시절, 세상이 변하고 삶 자체가 힘겨웠던 조선 말과 일제 강점기의 상황에서 한 마을, 우리나라의 축소판 같았던 최참판댁 일가와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의 우리의 삶에 대한 자세를 되짚게 한다. 삶은 그때가 더 가혹했지만 살아가는 일은 그때나 지금이나 쉽지 않다. 분명 독립도 했고, 주권국으로 우리가 그 시대보다 축복 받았음에도 생존은 언제나 개인 개인을 냉혹한 현실에서 살아남으라고 부축 인다. 과거의 고난의 시대를 살면서도 삶의 지혜를 말하는 책 속의 인물들은 실존하지 않는 허구의 인물이 아닌 듯싶다. 그것은 박경리 선생이 그려낸 인물이 대부분 입체적이며, 변화하는 사회와 시대상에 적응해 가며 성장하는 역사적 경로를 통과한 인물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박경리 선생은 그 다양한 인물들을 어찌 다 그려냈을까?
그러나 그 이야기 속에서 말하는 모든 것들은 인간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삶을 살아가는 사람, 위기를 극복하거나 만난 사람들의 일면일면들에서 느끼는 삶이 주는 고통, 괴로움, 희망, 삶의 기쁨 등을 생각하게 하는 작가의 소설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토지를 완독 하지 못했다. 대작인 탓에 책이 한 두 권이 아니었다. 조금 읽다가 말기도 하고, 결국 드라마를 통해 감독이나 극작가가 해석한 내용으로 이해 정도만 하거나, 그나마도 예전에 읽거나 본 것들이라 이야기가 가물가물하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의 삶이다. 토지의 배경이 되는 경남 하동과 구례와 남해 일대가 생각난다. 매화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광양과 여수 여행을 갔던 때 들렀던 토지 문학관의 기억도 조금 날 뿐이다.
책은 가끔 나에게 잡고 싶은 기억일 때도 있고, 지우고 싶은 장면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가진한 아득한 그리고 아련한 기억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을 누군가 더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그냥 삶에 대해 책이 어떻게 소개하는 지 들어볼 만한 그런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