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을 깨고 세계로 나오려는 자-데미안 리뷰
데미안
헤르만 헤세/ 민음사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데미안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중에서)
한 인간이 자신의 자아를 인식하고 스스로를 찾아가는 여정은 알에서 깨어 나오려는 새의 노력과 닮았다. 안락하고 안정된 알이라는 세계는 새가 되어서는 머물 수 없는 세계이다. 자신이 새로 태어난 것을 인식한 개체는 알을 깨뜨리고 나와 날개 짓을 통해 자신의 본질을 품을 수 있는 세계로 비상하여야 한다. 이 소설은 싱클레어라는 소년의 성장소설이지만 내면의 깊은 사색을 동반하는 어려운 소설이다. 성장기에 읽었더라면 소설의 일부도 이해하지 못했을 만큼 내면이 깊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부모나 제도의 시선에서 자신의 시선으로 옮겨가는 과정은 힘겹고 아프다. 따뜻한 사람들의 보호에서 벗어나 스스로 날개짓을 통해 날아가는 일은 세상이 정해놓은 것만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줄거리>
온화한 부모님과 누나들 사이에서 밝고 행복하게 성장하던 싱클레어는 밝은 세계의 질서 속에서 평온하게 성장한다. 그러나 그 안에서 솟아 나오려는 무엇에 의해 어두운 세계로 이끌려간다. 어느 날 친구들 앞에서 치기어린 거짓말을 했다가 크로머로부터 협박을 받으며 선과 악의 세계 사이에서 방황하게 된다. 어느 날 그 앞에 데미안이 나타나 크로머의 협박으로부터 벗어나게 도와준다.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경험하는 두 세계에 대해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통해 선과 악의 구분에 대한 회의로 이끈다. 이를 통해 세계를 더 깊이 의식하도록 계기를 만들고 싱클레어는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선과 악의 두 세계의 경험을 거치면서 부모님의 곁에서 보살핌을 받는 유년과 이별하고 자신에게 이르는 길을 찾는 외롭고 힘겨운 사춘기의 방황을 시작한다.
나는 얼마 전까지 밝고 깨끗한 세계에서 살아왔다. 나 자신이 일종의 아벨이었다. 그런데 이제 나는 이토록 깊이 <다른> 것에 박혀 있었다. 이렇게 심하게 떨어지고 가라앉아 있었다. ... 그대 마음 속에서 기억하나가 번쩍 떠올라, 한순간 거의 숨을 쉴 수 없었다. 비참한 이 상황이 시작되었던 저 고약한 저녁 그때 나는 한순간 아버지와 아버지의 밝은 세계 그리고 지혜를 문득 꿰뚫어본 듯 경멸했다. 그때 나는 카인이었고, 그의 표적을 달았던 나는 이 표적은 치욕이 아니라고, 이건 표창이라고 함부로 상상했다. 악의와 불행을 겪었기 때문에 내가 우리 아버지보다 더 높은 곳에, 선하고 경건한 사람들 보다 더 높은 곳에 서 있다고.P43(카인 중에서)
돌 하나가 우물 안에 던져졌고 그 우물은 나의 젊은 영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긴, 몹시 긴시간 동안 카인, 쳐죽임, 표적은 바로 인식, 회의, 비판에 이르려는 나의 시도들의 출발점이었다. P44(카인 중에서)
악인으로 규정된(낙인찍힌) 카인에 대해 데미안의 새로운 해석을 통해 지금까지 알고 있는 자신의 밝은 세계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는 싱클레어는 잠시 동안 알의 세계였던 부모님의 기대와 사랑 속에 머물러 있고 싶어 하지만 이미 자신의 내면에도 선과 악이 존재함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더 인식하고 자아에게로 인도하는 어려운 길을 가고 싶지 않아 갈등한다. 싱클레어가 기존의 도덕과 종교의 관점에 대해 회의할수록 혼란과 외로움에 빠진다.
내 인생에서 나에게 흥미 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에 이르기 위하여 내가 내디뎠던 걸음들뿐이다. p64 (예수 옆에 매달린 도둑)
조금 더 성장한 싱클레어는 도시의 김나지움에 다니는 동안 자신의 내면을 향한 방황으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탕한 생활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던 중 베아트리체에게 첫눈에 반하게 되면서 이성에 대해 인식하고 그녀를 우상 혹은 이상으로 생각하며 자신을 향한 방황으로 부서진 자신의 세계를 다시 한 번 <환한 세계>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쾌락과 방탕을 버리고 고귀함과 품위를 지닌 삶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으로 그녀를 그림으로 그려낸다. 그러나 그 그림의 인물은 자신이 오랫동안 그리워하던 데미안을 닮아 있음을 또한 자신의 얼굴임을 깨닫게 된다. 결국 자신이 갈망하던 세계는 데미안이 품고 있었던 세계임을 인식하게 되고 데미안에게 매의 그림을 그려 보낸다.
나는 자신을 파괴해 가는 방탕 속에서 살아갔다. 학교에서는 지도자이자 굉장한 녀석으로, 대단히 과단성 있고 위트 있는 녀석으로 인정받았던 반면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두려움에 가득 찬 영혼이 불안으로 퍼덕이고 있었다. (p100-베아트리체)
그 봄말 공원에서 나의 시선을 몹시 끈 소녀를 만나게 되었다. 첫눈에 곧바로 그녀는 내 마음에 들었다. ... 나는 그녀에게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p106-베아트리체)
나의 갑작스러운 변화는 충분한 조소를 받았다. 그러나 이제 나는 무엇인가를 사랑하고 숭배해야 했다. 다시 하나의 이상을 가진 것이다. 삶은 다시 예감과 비밀에 찬 영롱한 여명이었다. 나는 다시 나 자산에게로 편아히 안착했다. 미록 오로지 존경하는 영사의 노예이자 봉사자가 되어서라도 나는 더없이 열렬한 노력으로, 부서진 삶의 한 시기의 페허들로부터 자신의 위하여<환한 세계> 하나를 지으려 다시 노력해봤다.(p107-베아트리체)
악의 없는 인간도 살면서 한 번쯤은 혹은 몇 번은 경견과 감사라는 아름다운 도덕과 갈등에 빠지는 일을 겪게 마련이다. 누구든 한번은 자신을 아버지로부터, 스승으로부터 갈라놓은 걸음을 떼어야 한다. 누구든 고독의 혹독함을 조금은 느껴야한다.p 야곱의 전쟁
성장한 싱클레어가 대학에 다니며 내면이 깊어 가는 중 오르간 연주자 피스토리우스를 만난다. 그로부터 뒤섞인 선과 악, 신성과 마성, 인성과 수성 등의 혼재된 세계의 인식과 내면의 자아를 찾기 위한 고독한 투쟁이 깊어진다. 대학에 다니던 어느 날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다시 조우하고 그의 어머니 에바 부인을 만나면서 평온을 찾게 된다. 그녀를 통해 자신을 더 깊게 이해하고 자신에게 인도하는 경험을 한다. 그뒤 전쟁이 시작되면서 데미안과 싱클레어는 전장으로 나가게 되고 싱클레어는 부상을 입고 병원에 옮겨져 데미안과 마지막으로 만난다. 이후 자신의 어두운 운명의 영상을 포함한 자신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비로소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닮게 되고 이해한다. 스스로의 세계를 발견한 것이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p129-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나는 떠나게 될거야 너는 나를 어쩌면 다시 한 번 필요로 할 거야. 크로머에 맞서든 혹은 그 밖의 다른 일이든 뭐든. 그럴 때 네가 나를 부르면 이제 나는 그렇게 거칠게 말을 타고 혹은 기차를 타고 달려오지 못해 그럴 때 넌 네 자신 안으로 귀기울여야해. 그러면 알아차릴 거야. 내가 네 안에 있다는 것을.
이제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닮아 있는 자신,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고 다시 태어난 자아를 인식한 그 자신이 만들어 진 것이다.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며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영혼의 인도자를 만난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볼 수 있기까지 겪어야 하는 성장통을 데미안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싱클레어는 자신과 비슷하게 성장통을 겪으며 앞으로 나아가 자아를 발견한 데미안과의 만남을 통해 각성하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각성은 어린 시절처럼 세상이 단순하지도 선과 악으로 명확히 구분되지오 않은 혼란과 회의에 찬 곳이다. 그 곳에서 자신에게 닥친 악으로 떨쳐 버리기 위해서는 밝고 따뜻했던 어린 시절의 자신처럼 누군가 만들어준 세계를 깨뜨리고 나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새가 알을 깨뜨리고 자신의 날개를 얻어 더 넓은 세상을 가졌듯 인간도 도덕과 종교와 사회적 관습과 규범이라는 안락한 틀을 벗어나 사유하고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아를 각성한 인간과 다른 다는 것을 싱클레어는 알게 된다. 그 과정은 외롭고 때로는 쓸쓸하며 거칠기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