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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귀향과 귀성 길에서

먼바다 그랑카나리아 2020. 1. 26. 16:10

이번에 집에 가서 사진을 찍어 오지 못한게 못내 아쉽다. 다음엔 꼭 사진으로 찍어서 남길 생각이다. 귀여운 태림이와 태희의 얼굴고 엄마의 얼굴도 모두 사진으로 남겨야지. 분명 지난번에 생각해 뒀는데 잊어버렸다.



설 연휴, 부모님을 뵙고 돌아왔다. 포근해진 날씨가 아직 남아있을 매운 추위를 숨기고 있는 동안 그 날씨만큼 따뜻한 위로 받고 돌아왔다. 역시 엄마는 돌아와 같이 마주 앉아 밥을 나눌 자식들을 위해 엄마 마음이 가뜩 들어간 음식을 준비해 주셨다. 주름진 엄마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정성과 따뜻한 마음의 음식들을 먹으며 서로의 안부를 물어주고 그 곳에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에 위로를 받았다.

엄마께 인사를 드리고 시골집을 나서 대전에 계신 시부모님께 들렸다. 시부모님이 계시는 대전의 구도심은 엄마가 계신 시골처럼 낡은 동네다. 부모님의 나의 드신 모습처럼 동네도 나이를 먹은 곳이다. 한 달 전에 뵈었는데 잠깐 사이에도 부모님은 나이들 더 드신 것 같다. 세월이 부모님의 여러 곳에 묻어 있었다. 얼마 전부터 염색을 하지 않으신 부모님의 머리는 은빛을 넘어 힘이 없어 보여 마음이 안타까웠다. 백내장 수술을 마치신 아버님도 안대를 낀 얼굴에 마음이 쓰였다. 나도 언젠가는 우리 부모님의 얼굴을 가지게 될텐데 나이 듦이 좀 더 세련되면 좋겠다.

 

귀향길은 마음이 설렌다. 엊그제 뵈었어도 명절에 집으로 향한다는 것은 교향을 떠나 독립한 이후 언제나 바쁘게 살았던 날에 대한 잠깐 쉼표와 같았다. 그냥 집에 가서 맛있는 거 먹고 힘내서 돌아오는 일이었지만 결혼한 이후 시댁으로 가는 것은 조금 다르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귀성(歸城)은 다른 의미다. 밀리는 차들을 피해 새벽에 출발한 고속도로에는 차가 많지는 않았다. 어둠 속에서 속도를 내서 삶터로 돌아가는 길은 묘한 긴장감과 서글픔이 있다. 왠지 다시 처음 부모님 품을 떠나 나의 삶터로 향했던 그 때처럼 혼자서 잘 견뎌야할 시간들이 조금은 걱정이 되는 기분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성숙한 개체가 자신의 모체로부터 분리되어 스스로 살아가야할 때가 오면 느끼는 그런 불안이 나의 유전자 속에 남아 깨어나는 것 같다.

 

전화로 얼마든지 서로 안부를 묻는 이런 시대에 내가 이런 생각을 매번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나에게 귀향과 귀성은 이렇게 복잡한 심정도 섞여 있음이 분명하다. 2020년 다시 불을 지피며 열심히 살 것을 다짐한다. 어둠 속에 지나치는 길들과 도시들을 넘어 다시 나의 삶터로 무사히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