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우리 삶의 최종 목표인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행복이라는 단어에 탁석산은 의심하고 파헤쳐보라고 조언한다. 행복이 우리 시대의 신화가 되어 추상적이고 정의하기 어려운 삶의 의미로 삼아 우리는 멀고도 먼 길을 신기루를 찾아다니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탁석산은 행복의 개념은 공리주의자들이 개인주의와 민주주의, 계몽주의 등을 통해 형성한 최근의 개념이라고 말한다. 더욱이 상업주의와 영합하여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 과도한 압박을 주고 있다고 말한다.
행복을 일상의 소소함에서 얻는 만족감이라고 알고 있었던 개념에서 넘어서 정의하기를 통해 너무나 추상적인 개념이 되었음을 지적한다. 일상을 살며 얻은 소소한 만족의 감정은 수없이 많다. 기쁘고, 삶이 가치 있고, 슬픔이 자리할 때조차 감정은 순화되고 기쁨이 되는 순간순간이 있었지만 행복이라는 단어가 아우르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이 상태를 갖고 싶어 하게 되었고 이러다 보니 필요 이상의 스트레스를 담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의 글과 강연에서 그는 행복이 휘발성이 있어서 오늘의 행복이 내일도 같은 양 같은 크기가 아니며 오히려 사라져버려 축적할 수 없다고 말한다. 빈곤이 당연하던 시절에 배고품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행복한 줄 알았다. ‘등 따시고 배부르면 그만’이었던 시절에 비해 우리는 너무나 풍요롭지만 그것만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제는 상대와 비교하고 더 누리지 못함이 아쉽고 불행하기만 하다. 행복이 축적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행복의 개념이 만족이다 보니 만족은 상대적이며 셀 수 있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주의와 민주주의에 의해 개인의 만족감에 대한 기대치가 더 높아지고 개별화 되다보니 내감정이 중요하다. 그러다 보니 비교할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는 채울 수 없는 만족의 독을 가지고 뭔가를 채우며 오늘을 참아내도록 설득한다. 이러다 보니 행복은 항상 막연하고 멀리있고 언제 채워지는 지 알 수 없다. 결국 그로인해 우리는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행복이 목적이 아니라 좋은 삶을 추구하고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우리의 감정을 포괄하여 담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좋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 사회적 평등, 공동의 부, 예의, 공중도덕을 통해 이루어 갈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와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현대사회에서 타인과 연결되는 인간의 사회적 본능을 들여다 볼 것을 말한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사상과 개념들을 다시 재정립하고 잃어버린 것을 찾아가길 바란다.
그의 주장은 사회 구조가 민주주의와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발전하는 이 시대에 우리가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개념을 다시 돌아보도록 조언하는데 나도 찬성한다. 또한 사회적이며 양적인 의미의 행복이 사회적인 문제와 연관되어 있음을 인정한다. 최저생계비, 사회적 안전망, 실직자 문제 등을 사회가 좀더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의 이야기에 강조점을 두고싶다. 사회적 평등, 예의, 공중도덕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다시 구축하며 이를 통해 만족한 좋은 삶을 찾아 갈 것이라는 점에서 그의 지적에 타당함이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