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소동
‘아이구 미처버리겠다.’ 입안이 바짝 마르며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나왔다. 오후에 영화공간 주안에서 라이너가 영화 평론을 해준다던 벼르던 영화 <벌집의 정령>을 보려고 집을 막 나가려던 작은 가방안에 손을 넣어보았지만 그때 교통카드가 있는 카드 지갑이 잡히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기분이 싸해지면서 뭔가 잘못된 느낌이 스멀거렸다. 가방 안을 살펴보았지만 역시 없다. 급기야 나는 쇼파에 가방을 뒤집어 작은 립글로즈까지 모두 꺼냈는데도 카드 지갑이 없었다. 순간 모골이 송연해졌다. 어제 김선숙 선생님과 김은혜 선생님을 만나고 헤어지면서 백화점 지하의 베이글 맛집을 기억하고 집에 있는 아들과 남편을 생각하며 베이글을 몇개 집었고 계산을 할 때 카드 지갑을 열어 ㅇㅇ카드로 결재를 한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후 지갑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처음에는 어딘가 있겠지 싶었다. 그래서 어제 입고 나갔던 자켓의 주머니를 뒤지고, 어제 입었던 청바지를 찾아 다시 주머니를 뒤집고, 내가 집안에서 움직일 만한 동선내의 모든 것을 이잡듯 뒤졌다. 남편은 월요일 출장 가려고 가방에 챙긴건 아니냐며 나를 위로해주고 당황하지 않도 침착하게 찾을 수 있도록 도와 주었지만 그럴 수록 더 절망감이 엄습했다. 나는 출장준비 가방을 아직 챙기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씩 어제 있던 자리와 옷들을 점검하며 카드 지갑이 내가 예상한 곳에 없다고 생각하니 환한 낮인데도 집안이 어두어지는 것 같았다. 집을 두 시간 넘게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
그리고 정말 큰 걱정거리는 목요일에 받아온 법인카드가 그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월요일 출장 때 사용해야할 법인카드까지 없어졌다. 이제 집에는 없는 것 같다. 아.
백화점 고객센터에 전화로 분실물에 대해 물었다. 친절하게 전화를 받은 직원은 어제 오후부터 오전까지신고된 카드나 카드지갑 분실물은 하나도 없다는 말이었다. 아. 상황은 더욱 절망스러웠다. 최근 나는 물건을 자주 찾는다. 아니 원래부터 물건을 어딘가 두고 자꾸만 찾는 버릇이 있었는데 오늘 처럼 또 뜨겁게 나를 괴롭힌다는 생각을 했다. 쇼파에 쓰러져 지끈거리는 머리를 식히고 있자니 남편이 백화점이라도 다시 다녀오자고 했다. 사실은 나도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아니 결국은 백화점에 가겠지만 거기서 없다고 말하면 나는 정말 바보에 멍청이가 될까봐 그 말을 마지막에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시간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남편과 아들이 동행해서 백화점으로 갔다. 사실 이정도까지 찾았는데 없다면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작은 희망인 베이글 가게에 다시 갔다. 여전히 분주한 그곳의 직원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검은색 작은 카드 지갑을 분실했는데 어제 혹은 오늘 아침에라도 분실물이 있느냐고. 그런데 기적이 나타났다. 카드 지갑이 다행스럽게도 가게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 순간 정말 눈이 환해졌다. 아마 심봉사가 심청이 만나고 눈이 밝아졌다는데 나도 그런 느낌이었다. 실내가 환해지고 가슴을 꽉 메이게 했던 체증이 순간 가라앉았다. 한순간에 걱정과 근심이 모두 바람에 흩어지는 구름처럼 사라졌다. 그 직원이 너무 고마웠다. 나는 다시 베이글을 샀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갈 때와 반대로 마음이 너무 가벼워졌다.
영화를 놓치고 오후 시간이 다 사라져서 아쉽지만 소등으로 끝난 카드지갑 분실 사건이 그냥 헤프닝이 되어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휴, 큰일 날뻔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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